학창시절, 영원할 것만 같던 방학이 끝물에 다다랐을 때 마음 한 켠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방학숙제가 한가득 밀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처리했으면 좋았으련만, 지난날 자신의 게으름을 자책해봤자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마법이 부려지는 것도 아니고, 이러저러한 꼼수를 떠올려보았으나 어찌할 도리는 없었습니다. 그간 허비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부채'로 돌아온 셈입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학 이전까지 밀린 숙제를 풀어야 하는 건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갑자기 코흘리개 시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공원 일몰제와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이 일몰제 문제에 대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미디어를 이용해 '공원을 지켜내겠다'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표명하고 있는데요.
도시공원 일몰제는 20년 전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도시계획법 개정으로 도입됐습니다.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로, 공원, 도시 등의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며 도시계획법 4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죠.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되도록 했는데, 이 내용이 도시공원 일몰제의 골자입니다. 그래서 적용시점인 2020년 7월 1일이 되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396.7제곱킬로미터 면적이 공원 용지로서의 효력을 잃게 됩니다.
이처럼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 최종시한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공원 내 사유지를 매입하려는 지자체와 수십 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한 토지 소유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 '공원 사수' 외치며 '예산은 없다'라는 정부의 꼼수?
20년 이상 집행되지 않은 전국 도시공원은 약 1900여 곳에 달합니다. 서울시에서만 최소 12조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년 7월 1일 이전까지 전국에 있는 장기미집행 공원 부지를 모두 매입할 예산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16조 5000억원을 들여 '우선관리지역'으로 선정된 130제곱킬로미터를 우선 매입하거나 용도를 제한해 실제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시도 '모든 공원을 지키겠다'면서도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주민이용률이 높거나 난개발이 우려되는 구역을 우선적으로 보상해나가겠다고 입장을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자체가 예산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꼼수'를 쓰려는 의혹이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서울시 서초구 소재 말죽거리공원의 토지 소유주들은 "지자체가 임의로 구역을 나누어 주민의 통행이 이루어지는 바깥쪽 토지만 우선대상지역으로 선정해 매입하려고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로가 인접한 지역을 제외한 안쪽 땅을 이른 바 '맹지'로 만들어 땅값을 하락시킬 꼼수를 부린다는 겁니다.
■ 도시공원 일몰제, 국가가 풀어야 할 숙제
지자체는 공원 부지가 개인 토지 소유주들의 수익 수단으로 이용돼 난개발이 되는 경우를 막고자 공원으로 지정된 땅을 수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지수용'이라고 합니다. 토지를 수용하는 방법은 지자체가 토지소유주와 협의를 통해 취득하거나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수용재결을 거쳐야 합니다.
토지주는 감정평가를 거쳐 산정된 토지보상금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지자체와 협의할 필요 없이 재결 절차를 거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적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과정에서 지자체가 정도를 걷지 않으려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토지수용 비용 마련에 곤란을 겪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밀린 방학숙제입니다. 20년 전에 주어진 숙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개학이 임박해서 꼼수를 써보려는 행태는 선진 행정국가에서 기대할 모습은 아닙니다.
20년 전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가재정투입의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라는 취지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개인에게 다시 그 부담을 돌리는 것은 도시공원 일몰제의 제도 취지와도 어긋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보는 공원일몰제 문제를 더 이상 '지자체 관할'이라며 선을 긋기보다는 재정 지원 등의 대안을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방학은 곧 끝이 납니다. 밀린 숙제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꼼수가 아닌 정도를 걷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간 허비했던 시간은 고스란히 부채가 됐고, 밀린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오롯이 국가의 몫입니다.
- 법무법인 명경 서울 김재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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